일제강점기에도 한글을 지키고 사랑한 안산人

최용신과 샘골강습소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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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운동가이자 농촌운동가인 최용신은 일제강점기 안산시 상록구 본오동(샘골마을)에 있던 샘골강습소에서 아이들과 농민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농촌 계몽 활동을 펼쳤다.

1909년 함경남도 덕원군에서 태어난 최용신은 원산 루씨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협성신학교를 다니며 문맹 없는 농촌, 잘사는 농촌 건설이라는 이상을 꿈꿨다. 1931년 최용신은 YMCA농촌지도원 자격으로 안산 샘골마을에서 본격적인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했다. 농촌운동에 뜻이 있던 최용신은 마을의 유일 교육기관인 샘골강습소에서 아동은 물론 청년, 부녀자 등을 대상으로 한글, 산수, 재봉, 수예, 가사, 노래, 성경 등을 가르쳤다. 특히 한글 강습을 통해 문맹 퇴치에 노력을 기울였다. 최용신은 아이들을 조선의 미래라고 생각하고 돈이 없어 학교에 못가는 아이들을 모아 무료로 가르쳤다. 샘골학교 학생들은 졸업 후 각자의 꿈대로 선생님이 되거나 사회에서 각자 맡은 일을 건실하게 해나가는 사람으로 자라났다.

1932년 늘어나는 학생들을 위해 샘골 주민들과 힘을 모아 낡은 강습소를 새로 지었으나 일본의 방해로 학생 수를 110명에서 60명으로 줄여야 했다. 인원 제한으로 교실에 입장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해 최용신은 창문을 활짝 열고 밖에 있는 아이들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수업을 진행했다. 한명이라도 더 많은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오전반, 오후반, 야간반과 3부제 수업 운영, 가정 방문까지 진행하며 교육에 힘을 쏟았다.

일제 탄압에도 학교에서 몰래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역사를 가르치며 학생들에게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심어준 최용신은 잠시 일본유학을 떠났다가 병이 들어 샘골마을로 돌아왔다. 이후 아픈 몸을 쉬지 않고 아이들을 가르치며 농촌계몽운동을 하다 1935장중첩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최용신은 심훈의 소설<상록수>의 주인공 채영신의 실제 인물로 알려져 있는 자랑스러운 안산시민이다. 1995년 정부가 국가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으며 2007년 안산시는 샘골강습소가 있던 자리에 최용신기념관을 열어 선생의 뜻을 이어가고 있다.

지하철로 갈 수 있는 최용신기념관과 최용신 묘소(향토유적 제18), 기념비 등이 있는 상록수공원은 이름처럼 늘 푸른 나무들이 반기는 산책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어려운 시기에도 우리의 말과 글을 잊지 않고 배우며 지켜낸 안산인들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한글날을 기념하며 편히 쉴 수 있게 됐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한글을 쉽게 배웠던 말놀이 동요를 온가족이 함께 따라 불러보며 한글날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도 좋겠다.

 

김선영 명예기자_rimmom@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