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안공주와 정정옹주 묘를 찾아서

안산에 잠든 왕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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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안공주

조선 제18대 왕인 현종의 막내딸로 태어난 명안공주(明安公主, 1664~1687)는 아버지인 현종과 오라버니인 숙종(조선 제19대 왕)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다. 현종은 조선 국왕 중 왕비(명성왕후) 외에는 후궁을 두지 않아 슬하에 숙종과 명선명혜명안공주뿐이었다. 명안 공주의 두 언니, 명선공주와 명혜공주는 혼약을 했으나 가례를 올리지 못하고 요절한 슬픔을 겪었다. 그런 까닭에 명안 공주는 현종과 어머니 명성왕후의 극진한 사랑은 물론, 숙종의 하나 남은 누이로 각별한 애정과 관심을 받았다.

숙종은 명안공주를 지극히 사랑해 청나라에서 고급 비단이 들어오면 후궁을 주지 않고 동생에게 보냈을 정도였다. 조선왕조실록 곳곳에 숙종이 누이 명안공주에 대해 각별했던 애정과 23세에 일찍 세상을 떠난 공주의 죽음을 슬퍼한 애통한 마음을 찾아볼 수 있다.

명안공주 부마인 오태주는 1679년 명안공주와 혼인해 해창위(海昌尉)에 봉해졌고, 명덕대부(明德大夫) 위계를 받았다. 글씨를 잘 썼는데 특히 예서와 시문에 능해 숙종의 총애를 받았다. 1716년에 49세 나이로 죽자 왕이 슬퍼하며 친히 글을 지어 제사했다.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 자리하고 있는 명안공주 묘는 경기도 지정 문화재다. 묘역 가운데에 명안공주와 남편 오태주의 합분 묘가 자리 잡고 있으며 조선의 공주 묘답게 석물 조각이 아름다운 기품을 풍기고 서 있다. 묘역은 맨 위쪽에 시어머니 상주 황씨 묘가 있고 제일 아래쪽에 양자 오원의 묘가 자리하고 있어 가족의 평온함이 느껴진다.

 

명안공주어제치제문비(明安公主御製致祭文碑)

안산시 상록구 사사동에 있는 명안공주어제치제문비는 숙종이 누이 명안공주와 부마 오태주의 죽음을 애도하며 내린 어제치제문을 새겨 놓은 비석이다.

비문 전면에 1716년 숙종이 내관 장세상(張世相)을 보내 오태주를 애도한 글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1681년 여관(女官)을 보내 명안공주를 애도한 글이 새겨져 있다.

전면에서 숙종은 ……어머니 명성왕후가 당시 부마를 맞아들일 때 그의 나이는 어리지만 일찍이 지각이 트이고 학업의 성취됨을 보고 부마로 잘 골라 뽑으셨는데, 지닌 재주와 뜻을 다 펴지도 못하고 50세도 되지 않아 혼연히 세상을 떠났으니 안타까운 심정 눈물만 흐른다고 애도했다.

뒷면에 있는 명안공주에 대한 치제문에서는 ……언니 명선과 명혜가 잇달아 죽음에 엄청난 슬픔을 가누지 못했는데, 이제 배필을 만나는 예를 올려서 화락한 금슬을 이루고 장수를 누릴 것을 기약했는데, 하루아침에 이와 같은 기별을 듣다니…… 유유한 나의 정으로 그대를 일찍 영결하려니 소리쳐도 응함이 없고 불러도 대답이 없거늘, 저 푸른 것이 하늘인데 어찌 차마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이 환하고 밝은 세상을 버리고 저 어둡고 캄캄한 세상을 향해 가니, 천장지구토록 이 애통한 심정 감내하기 어렵다라며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이와 함께 각종 고문서 등 명안공주 관련 유물은 강원도 강릉시립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정정옹주

정정옹주(貞正翁主, 1595~1666)는 조선 제14대 왕인 선조의 여덟 번째 딸로 임진왜란이 한창이던 1595년 황해도 해주행궁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자질이 뛰어나 아버지한테 직접 효경(孝經)’내칙(內則)’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자라면서 단정하고 의젓해 스스로 예법을 배워 실천했다. 1604년 정정옹주라는 작호를 받았고 1606년 교리 유시행의 아들 진안위(晋安尉) 유적과 혼례일 택하려 했으나, 유적이 부친상을 당해 탈상 후인 1610년에 출가했다.

한편 서자로 왕위에 오른 광해군이 왕통의 취약성을 극복하는 동시에 후환을 없애고자 영창대군을 강화도에 유폐시키고 살해한 뒤 인목대비마저 폐위하려 하자, 정정옹주는 남편과 함께 대비 폐위를 반대해 유배 위기까지 몰렸다. 이후 궁궐 출입을 삼간 채 왕실 대소사에도 참여하지 않고 칩거하던 중 1619년 남편이 병을 얻어 25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 뒤 광해군을 몰아내고 즉위한 인조는 광해군 치하에서 유적이 정의롭게 처신한 점을 칭송햇으며, 정정옹주에게도 두터운 예로 대우했다. 후사가 없어 시동생 유영의 아들 유명전을 입양했으나, 그도 문과에 급제한 지 2년 만에 사망하고 이후 2년여 만 정정옹주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임금이 정사를 폐하고 장례비를 지원했으며 몸소 빈소에 가서 남편 유적과 합장하도록 명하기도 했다.

정정옹주 묘소는 안산시 상록구 부곡동 산 50-40번지에 있으며 1991112일 안산시 향토유적 제14호로 지정됐다. 망주석, 문인석, 동자석 등 석물들이 오랜 세월 동안 정정옹주 묘를 묵묵히 지키고 서있다.

 

김영미 명예기자_flowery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