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도시 안산 ⑥ 안산을 대표하는 현대화가 신성희 화백

회화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 ‘누아주’기법 만들어


제457호(2018.8.22.)

본문

 

<Peinture Spatiale>

 

 

죽음 상징한 찢겨 진 캔버스, 삼차원 세계로 엮어 살아나

 

‘미술의 도시 안산’이 소개하는 마지막 현대 화가는 누아주의 거장 신성희 화백이다. 앞서 소개한 현대 화가들이 안산이 신도시로 개발되는 1990년 무렵 안산으로 옮겨 와 작품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화가라면 신성희 화백은 1948년 안산 수암동에서 태어나 안산초등학교와 서울예술고등학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거쳐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했다.

‘누아주’(엮음)라는 미술 장르를 개척한 그는 세계 미술사에큰 발자취를 남긴 화가로 평가받는다. 2009년 서울 소마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여는 도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그를 직접 만날 수는 없었지만 영혼의 동반자였던 정이녹 여사를만나 신성희 화백의 삶과 작품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故신성희화백>
 

‘회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갈구한 삶

1969년 홍익대 회화과 재학 중 18회 대한민국예술전에서 특선을 수상하며 화단에 파란을 일으켰던 신 화백은 1980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뒤 ‘누아주’라는 독특한 형태의 미술 기법을 창안했다. 누아주라는 기법을 만들기까지 그의 작품활동은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의 해답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었다. 초기 작품은 실상과 허상의 문제를 제기하며 회화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이뤄진 시기다. 69년 국전 특선 후 1979년까지 ‘마대작업’을 통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갈구했다.

정이녹 여사는 “그는 작품을 통해 실상과 허상의 벽을 넘고 싶어 했습니다. 초기 마대작업은 회화 본질에 대한 탐구 단계로 실상인 마대 위에 허상인 마대 무늬를 그리는 작업을 주로 했습니다. 실상과 허상의 공존, 대비를 보여주고 싶어 했지요”라고 말한다.

회화 근원을 찾고 싶은 갈망은 근대회화가 꽃피고 현대회화의 중심지가 된 프랑스 파리로 그를 이끌었다. ‘서양미술의 본고장 파리에서 내가 지금 어디쯤 와있는지 한 3년만 살아보자’ 고 시작한 파리생활. 3년이 30년으로 늘어나면서 그의 작품은 10년마다 더욱 정교해지고 혁신적으로 변

해갔다. 

 

<정이녹 여사>

 

꼴라주, 평면 세움, 누아주 기법

회화 평면을 탈출하다

파리에서 그의 작품은 판지에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조각낸 후 재구성하는 꼴라주(collage) 형식으로 발전했다. 신성희 화백은 이 시기 자신의 고민을 “(화폭에)갖다 놓고 싶은 것은 대체로 3차원적인 형상인데 비해 놓여질 곳은 캔버스나 종이 같은 2차원의 평면이다. 이 두 개의 상반된 개념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조화시킬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1985년 10월 공간지 ‘입방체에 담겨진 회화’ 글 중에서)라고 털어놓았다.

그의 고민은 90년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고 그것을 일정한 크기로 박음질해서 하나의 화면으로 새롭게 구성하는 평면세움 단계를 거쳐 누아주 기법으로 완성됐다.

불어로 ‘맺기’ ‘잇기’라는 뜻을 가진 누아주는 엮거나 묶어 제작하는 장르를 통칭하는 단어가 됐다. 누아주 기법을 선보인 신 화백의 새로운 도전은 화단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평론가들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원근법을 만들어 마치 평면을 공간처럼 보이게 했다면 신성희는 캔버스가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도록 찢고 묶어서 생명을 부여한다”는 극찬을 쏟아냈다.

신 화백도 “나의 작업들은 찢어지기 위하여 그려진다. 찢어진다는 것은 이 시대 예술에 대한 질문이며, 그것이 접히고 묶여지는 것은 곧 나의 답변이다.(중략) 찢어진 그림의 조각들은 나의 인식과 표현의 대상들이 죽었다는 것의 증거물이다. 나의 두 손은 이 증거물들을 다시 불러 일으켜 바람이 오가는 빈 공간의 몸에 예측할 수 없는 신경조직을 새롭게 건설한다”(2001년 갤러리 현대 전시회 카달로그)고 말했다.​

 

 

"​논으로 달려가 개구리 소리 나는 곳에

돌을 던져 팔짝 뛰어 오르면

대나무 막대기로 단번에 쳐서 잡던,

내 고향 안산에

내 이름을 단 집을 하나 짓고 싶었다​"

 

 

30년 타국살이 고향 사랑도 깊어

아들은 건축가로 딸은 의상 디자이너로 아버지의 작업 스타일을 이어가고 정 여사는 신 화백의 환희와 기쁨, 고뇌가 담긴 작품들을 세계에 알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미국과 프랑스 스위스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갤러리 현대와 함께 Amoy(뉴욕), Fize(뉴욕, 시카고, 런던), FIAC(파리) Art Fair도 참가한다. 올해는 LA에 있는 Blum & poeGallery에서 개인전을, 10주기인 내년에는 국내 갤러리 현대에서 전시회도 기획 중이다.

지난 2015년에는 그의 작품이 고향 안산을 찾아왔다. 단원미술관에서 ‘신성희 고향에 돌아오다’ 전이 열린 것이다.

정이녹 여사는 “누구나 고향을 떠나 있으면 더 그립고 소중하게 생각하는데 우리도 그랬던 것 같아요. 신 화백은 늘 ‘우리집 뒷마당이 향교와 맞닿아 있었고 담도 없었다’고 말했죠. 수락산(수리산)에서 고사리 뜯던 이야기, 산나물 캐던 이야기, 독수리 새끼를 풀숲에서 발견하고 닭장에서

키우느라 학교가 끝나면 책가방 내려 놓고 곧장 앞 논으로 달려가 개구리 소리 나는 곳에 돌을 던져 팔짝 뛰어 오르면 대나무 막대기로 단번에 쳐서 잡던 이야기 등을 노래처럼 가락처럼 되뇌이곤 했지요”라며 작가의 고향 사랑을전한다.

안산에서 태어나 세계적인 거장으로 성장한 신성희 화백.정이녹 여사는 “신 화백이 남긴 숙제 중 하나가 고향에 그의 이름을 단 집을 하나 짓는 거에요. 그의 작품이 고향에서 오래오래 살길 바라는 소망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안산과 신 화백은 어떤 모습으로 인연을 이어갈까? 찢고 자른 후 묶어 기어이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하는 그의 작품처럼 영원히 지속되길 기대해 본다.​

 

 

<안산 향교앞에서 찍은 신성희 화백(가운데) 가족사진>

 

 

하혜경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