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들의 창조적인 실험, 벽화로 만나다

경기도미술관 ‘그림이 된 벽’ 전시, 오는 6월 17일까지 열려


제454호(2018.5.30.)

본문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높이 9m와 가로 50m의 벽에 자유롭게 그려진 이미지는 시선을 압도한다. 미술관 공간을 캔버스 삼아 그려진 작품들은 전에 본 적 없는 크기와 이미지로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시야의 범위를 넘어선 그림들 사이를 거닐 땐 새로운 시지각적 경험도 맛보게 된다. 그

림이 된 벽이자 벽이 그림이 된 작품들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수도 있고, 멀리 떨어져 전체를 조망할 수도 있다. 어떻게 보든 미술관에서 느끼는 특별한 경험이다.

경기도미술관에서 오는 6월 17일까지 선보이는 ‘그림이 된벽’은 국내에서 쉽게 접하지 못했던 프랑스 현대미술가 8인이 전시장에서 직접 제작한 벽화를 볼 수 있는 전시다. 참여작가들은 그동안 작품의 배경으로만 존재했던 벽에 건축적 규모의 드로잉을 하거나 긁어 파내고, 불로 그을리는 등

회화를 해체하는 창조적인 실험을 보여준다. 이런 시도는 1970년대 전후 프랑스의 전위적인 예술운동 ‘쉬포르 쉬르파스(supports surfaces)*’의 영향 아래 있는 것으로, 캔버스의 틀을 벗어나 회화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물음을 던진다. 불을 이용해 벽면에 그을음을 남겨 추상적인 패턴을

만든 크리스티앙 자카르의 ‘그을음의 악보’는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띠는 작품이다. 연소된 흔적과 그을음으로 가득 채워진 벽면은 회화의 전통적인 재료 없이 오직 불과 연소성 젤만을 이용해 만들어졌다. 수백 개가 넘는 불의 연소과정 흔적이 그대로 나타난 작품은 생의 명멸을 환기하며

숭고한 공간을 창출한다.

클레르 콜랭-콜랭은 오래된 유화의 갈라진 틈을 모티브로 삼아 끌개로 벽면에 균열을 내는 작업을 했다. 파내어진 벽면의 틈에는 지층처럼 벽의 기억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고, 작품의 선들은 그림이 되어가는 시간을 함축한다. ‘무제’는 반복된 작업 속에서 마치 주름이 생긴 피부와 같이 시

간의 흔적을 축적한 벽화가 됐다. 벽면 전체를 흑연 드로잉으로 채운 크리스티앙 로피탈의 ‘마음의 일종-상상’은 마치 꿈속을 헤매는 것처럼 실재하지 않는 상상 속 이미지들이 구름처럼 부유하는 환영을 일으킨다. 기이한 식물이나 유령, 외계 생명체 같은 이미지들이 익살스럽거나 그로테스크하게 서로 얽히고 이어져 있는 모습은 초자연적이고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올리비에 노틀레의 ‘단단한 벽, 달콤한 집’은 밝은 노랑 색면과 검정 드로잉으로 벽면 곳곳에서 관람객들의 능동적인 상상을 자극한다. 관람객들은 검정색 형상을 상상의 단초로 삼아 스토리를 만들거나 기억을 끄집어내 생각을 이어나가게 된다. 작가는 마치 숏과 숏 사이를 편집하는 영화감

독처럼 벽면들과 공간을 하나의 거대한 프레임으로 활용해관람객들을 놀이의 경험에 참여시킨다.

미술관 관계자는 “이번 전시 참여 작가들은 국제 비엔날레에 초청되거나 프랑스 현대미술사에 기록될 만큼 명성 있는 작가들”이라며, “사진으로는 그 감흥을 충분히 느낄 수 없으니 꼭 전시장을 방문해 회화의 실험성을 경험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전시장 안에는 관람객들이 전시 작품들과 연계된 조형 활동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는 미니어처 공간도 따로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 관람객들은 같은 모양의 자석판, 벨크로, 라인테이프를 벽에 선처럼 잇거나 도형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마음에 담아둔 상상의 세계를 자유롭게 그려보며

작품과 연계된 벽화 활동을 자유롭게 경험해볼 수 있다.

*쉬포르 쉬르파스:‘바탕’을 뜻하는 쉬포르(Supports)와 ‘표면’을 의미하는 쉬르파스(Surface)의 합성어인 이 예술운동은 회화의 바탕을 이루는 물질과 표면 이미지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탐구했다.

 

◇ 문 의 : 경기도미술관 홈페이지(http://gmoma.ggcf.kr)

송보림 명예기자_treehelper@gmail.com